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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은 채권 추심..

난 그냥 잘하고 싶었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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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외근을 인천쪽으로 갔을때였다. 부평에 있는 GM공장을 지나갔을때였는데 잊고 살던 채무자에 대한 기억이 생각났다. 

 

수년전이라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그 당시에 아마 60이 거의 다되셨던걸로 기억하는데 가족에게 대접 못받는 그런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그와중에 연체였었고........

 

거의 아버지 뻘이라 사연을 들어보니 원래 잘나갔던 사람이었다. 김우중 회장이 있을시절에 대우 자동차에서 인정받던 사람이었고 90년도 초 당시에 연봉이 330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인천 아파트 한채가격이 2200만원정도였다하고 

 

어릴때 기억으로 과자 한봉지가 100원에  부모님이 장보러 시장가실때 500원 들고 가시곤했던 기억이 난다. 

치킨도 몇천원 했던거 같고 짜장면도 500원인가?? 그 이하인가?? 했던 기억...

 

회사내에서도 12명을 뽑아 사원들 가르치는 강사 역할도 했는데 연봉 제외하고 그거만 한달에 40만원씩 받았다하니

지금으로보면 잘나갔던건 맞다.  그러던중 큰아들이 공부를 좀 잘하고 공부 욕심이 있던찰나에 영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고 이분이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니 어찌저찌 보내도 뭔가 이 금액으론 빠듯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창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인천 로데오 거리 중심쪽에 대출을 크게 땡겨서 술집을 크게 열었으나 사전 조사 및 경영미숙으로 인해 모든걸 다 해먹어버렸고 잘나가던 대기업 사원에서 한순간에 채무자가 되버린거다. 

그 빚으로 인해 살던 집을 팔고 단칸방 월세로 가족들이 이사가면서 모든 평화가 무너졌다고...

 

그나마 전직장 지인들이 소개를 해줘서 하청업체 관리직으로 다시 취업을 했다고 한다.

하청업체긴했으나 관리직이기때문에 급여는 상당히 받았다고는 하지만 빚이 워낙커서 오랜 시간이 되도록 허덕였다고 한다. 그 사이에 imf도 오면서 다니던곳도 망했고 또 이래저래 팔려다녔으나 상황이 좋아지기는 커녕 더더욱 안좋은쪽으로 풀리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그런 가장을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얘기 듣는 와중에 골방에서 연신 담배만 피는데 혼자 옛날 생각에 잠기며  만약 내가 그때 계속 그 회사를 다녔더라면.....나중에 후배들 들어보니 연봉 1억은 기본이고 그 이상 되는 사람들도 많았고 본인도 계속 다녔으면 남부럽지 않게 살고 대접 받았을텐데 아들을 위해 선택한 일이 이렇게 크게 되버릴줄은 몰랐다...가족을 원망한적은 없지만 나는 그냥 잘하고 싶었을뿐이었다 가족을에게 더 좋은 환경과 생활을 주고 싶었을뿐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일이 이렇게 된거다  매일 전화 안받고 피해서 미안하고 여기까지 찾아오게 한 당신에게도 너무 미안하다며 재를 털지 못한 담배가 자연스럽게 떨어졌었다. 

 

그 와중에도 아들 유학 못보내줘서 너무 미안하고 맘속에 남는다고 했던 가장......늙고 지친 몸이지만 다음주부터는 노가다를 고정적으로 나갈수 있으니 전화오기전에 입금할테니 문자만 잘 보내달라고 했던분

 

나 역시 코로나와 해당 회사가 망하면서 그 업계를 떠났지만 부평공장을 보며 갑자기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뭐하고 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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